제목: 주님, 무엇을 준비해야 합니까?
하나님께 내 생명을 드렸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그게 전부인가?
우리나라의 전쟁을 대하는 태도를 살펴보자.
북한의 위협 앞에 우리는 소극적이다.
반면 이스라엘의 전쟁 앞의 태도는 사뭇 다르다.
적극적이다. 그들은 싸우고, 매번 승리한다.
우리나라의 역사를 보자.
역사를 잘 모르는 나지만, 그런 내가 봐도
우리나라의 역사는, 한마디로 요약하면
"이웃나라들로 부터의 수탈의 역사"였다.
그래서 우리민족에게는 '한'이 그렇게 많은 것이다.
왜 그런가? 왜 전쟁 앞에서의 우리의 태도는 그럴수밖에 없나?
위협을 직면하지 않은 태도때문에...
위협에 직면하지 않고 회피하니까, 당연히 전쟁에 준비할 수도 없다.
회피하고 안보려하니까 상황이 닥치면 부랴부랴...
성령을 받으면 우리는 "죽으면 죽으리라!" 하고 마음까지 먹는다.
그러나, 그러고나서 우리가 기껏 상상하는 장면은 무엇인가?
1) 민족성에 의거하여, 제일먼저 떠오르는 것은 일제강점기때 믿음의
목사님들이 모진 고문, 사형으로 죽는 장면?
2) 성경속에서, 열두 사도가 각각 순교하는 장면, 베드로가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하거나, 바울 사도가 참형으로 순교하는 장면?
그 장면을 떠올리는 정도... 그게 다다.
안타깝지만 그게 다다.
"죽으면 죽으리라" 마음먹어도 내가 할수있는건, 고작 그게 다다.
이것의 맹점은, 그 상황이 올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점.
이 "죽으면 죽으리라"는 마음과 태도가 언제 발휘되는가?
그렇게 우리의 죽음이 코앞에 닥쳐야 그 믿음이 발휘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들이, 일제시대의 목사님 들이나, 열두 사도분들이 무엇을
하다가 죽었는지를 봐야지...
그들이 무엇을 했는가?
그들이 목숨을 걸었는데, 순교하려고 목숨을 건게 아니지 않은가?
그들은 복음을 전했다. "복음의 열망"이 그 어떤것도, 죽음조차도 막지 못했다. 복음의 열망을 가질 수 밖에 없게 하는, 그 살아계신 주님을 만나게 하소서.
오늘, 토요일 본문, 역대하 27장에서는 하나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가?
역대기의 왕들은 진영과 망대를 견고히 하므로 준비하였다.
그들은 전쟁에 대비해 무언가를 건축하였고, 증축하였고, 견고히 하였다.
그렇다. 그들은 "준비"하였다.
그래서 암몬자손과 싸웠고, 이겼고, 은과 곡식을 얻었다.
그렇다면 이 말씀을 오늘날 우리의 삶에 적용하면,
우리의 구체적인 순종의 제목은 무엇인가?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깨끗한 그릇.
"마 5:8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먼저 살아계신 하나님을 봐야 하지 않는가?
먼저 살아계신 주님을 만나야, 그 복음이 무엇인지, 진짜 복음이 무엇인지,
그 복음에 대한 열정을 받아 세상에 나가 복음이 편만하게 증거하지 않는가?
"히12:4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흘리기까지는 대항하지 아니하고"
죄와 피흘리기 까지 싸우는 것.
그래서 죄를 산산조각 내는것.
견고한 진을 파해내는데 까지.
그리고 몰아내고, 다시올 것에 대비해 견고히 성읍을 세우는데 까지가는 것.
주님, 이 12월. 정말 기도하게 하소서. 정말 기도하겠습니다. 기도와 말씀으로 살아계신 주님을 보게 하시고, 우리가운데 영광중에 임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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