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고집이 너덜너덜해진것 같다.
어렸을때 고집이 세다란 말을 들었고, 그 말들이 "그래,난 고집이세다"하고 안그래도 센 고집을 더 강화시켰던 것 같다. 그때 누군가 "고집을 버리라!"고 말해줬더라면. 아, 부모님들이 하셨겠지. 근데 내가 못알아들었겠지.
근데 더 확실히 훈계해줬었더라면 좋았겠다'싶다. 고집은 버리는거라고. 그게 살길이라고.
하나님께서는 내게 "돌과 같은 마음에 부드러운 마음을 주셨다"고 얘기해주셨다! 그렇네요 주님, 이미 주셨습니다.
#2.예수님은 빛이십니다. 어제 기도를 통해 인정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3.
요한계시록 3장 후반부에는 라오디게아 교회에 보내는 말씀이 나와있다. 하나님이 내게 하시는 말씀같다.
계3:15~16절.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하나님의 경고처럼 들렸다.
옛날에 군대에 있을때 나를 핍박(?)했던 상관이 나의 행동을 보며 했던 말이다. 그때 이 말을듣고 충격을받아서 여태껏 기억에 남아있다. 마음에 찔렸지만, 찔린 그대로 내 마음에 묻어두고 있었다.
그러면서 19절에 말씀하신다.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그렇군요, 주님. 이제 열심을 내야할 부분을 알았습니다! 회개에만 열심을 내면 되는군요!
또 깨닫는것은, 이 책망과 징계는 "내가 사랑하는 자"에게만 하신다고 하신다!
앞서 차지도 뜨겁지도 않다고 하신 주님이, 찬것과 뜨거운것중에 어느방향으로 가야하는지도 알려주신다. 회개에 열을 내라! 회개에 뜨거워져라! 고 말씀하시는것 같다.
그러면서 20절 말씀이 나온다.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이것이 회개하라는 말씀으로 들린다.
#4.바울은 "나는 날마다 죽노라" 하였다. 이 말씀을 받아들이기로 인정하고 조금 묵상해보니 (영적전쟁에서) 나는 날마다 죽노라. 인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 않은가? 전쟁에서는 내 생명이 죽는건 당연하지않은가? 죄와 싸우되 피흘리기까지 싸우라! 피흘린다는건 죽는걸 뜻하지 않는가?
옛사람이 죽어지는것이다. 주도권을 내어드리는것인데, 예수님이 대신 싸워주시는것인데, 백전백승하시는 승리의 예수님이 싸워주시는 것인데, 그럼 그걸 죽었다고 봐주신다. 얼마나 감사한가?
#5. 정오기도회때 "빌립이 사마리아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니(행8:5)"를 듣고 허윤정 자매님이 이 사마리아성은 내 안에도 있다고 말했다. 그때는 잘 이해가 안됬다. 그러나 지금은 깨닫게 된다.
맞네요! 주님, 내 안에 사마리아성이 있네요. 음란의 사마리아성, 교만의 사마리아성이 있네요. 빌립처럼 내 안에도 발길 닿는대로 두루 돌아다니며 복음 전하길 원해요! 이 땅도 여기도 예수님 들어오소서. 온갖 고집을 내려놓고 선포하게하소서. 음란아 너를 원하지 않아! 내게서 떠나갈찌어다! 예수의 이름으로 떠나갈찌어다! 선포하고 몰아내고 진멸하고. 가나안땅을 정복하게하소서. 그땅의 귀신들이 떠나가고, 기쁨이 넘치게하소서.
#6.오늘 목사님이 나더러 '포기하지 않았다'고 하셨다. 그 말씀을 듣고 생각해보았다. 내가 포기하지 않을수 있었던 것은, '나만 포기하지않으면 절대로 포기하지않으신다는 하나님께 대한 신뢰와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분은 절대로 포기하지 않으시는분이기 때문이다.
또 그것이 우리교회의 영적풍토이다. 내가 비천하고 미련한자리에 있을지라도 나를 포기하지 않고 사랑의 눈으로 봐주신 목사님들과 사역자분들, 집사님들이 계셨기때문에 그 영적풍토안에서 내가 지레 떨어져나가지 않고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던것 같다.
#7. 오늘은 예수님과 함께하는 기쁨과 축제의 밤이다.
#8. 그동안, 군제대 후 교회에 있으면서 4년간, 지역아동센터, 디오슨 등 몇몇자리에 있으면서 실패를 자주 경험했다. 관계에서의 실패 말이다. 지역아동센터에서는 센터장님과, 디오슨에서는 집사님들과 그랬다. 큰 사건만 봐서 그렇지 사실, 교회안에서 여러곳에 있으면서 많은 관계의 경험, 또 실패의 경험을 했었다.
나처럼 시야좁은사람이 교회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짧은 시간에 이 크고작은 많은 실패의 경험을 할 수 있었을까? 아마 평생을 가야 못했을거다. 일평생을 보낸후에야 실패했다고 깨달았겠지. 아님 깨닫지도 못하고 원망만 한채 죽었거나. 또 실패할때마다 그 문제의 답을 가르쳐주는 교회였기에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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