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27:27-31
이에 총독의 군병들이 예수를 데리고 관정 안으로 들어가서 온 군대를 그에게로 모으고 그의 옷을 벗기고 홍포를 입히며 가시관을 엮어 그 머리에 씌우고 갈대를 그 오른손에 들리고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희롱하여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며 그에게 침 뱉고 갈대를 빼앗아 그의 머리를 치더라 희롱을 다 한 후 홍포를 벗기고 그의 옷을 입혀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끌고 나가니라
'대체 왜 예수님은 이런 고통과 수치와 모욕을 받아가시며 이 길을 가셔야 했는가?'
'왜 예수님은 힘도 있고 능력도 있으신 분인데, 이 모든 억울함과 불의한 재판 가운데 침묵하시는가?'
'왜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자신을 내어주어야만 했는가?'
'왜 하나님은 그의 하나뿐인 아들을 십자가에 죽임당하도록 버려두신 것인가?'
이런 질문들이 예수님의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을 보면 늘 내 마음에 떠오른다.
알 것 같다가도 다 모르겠는.. 이해가 되는 것 같다가도 다는 아닌 것 같은..
그런 찝찝함 속에,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온 사순절, 그리고 고난주간.
예전과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마태복음 27장을 여러번 읽어야 하는 기회가 있었다는 것 정도..?
초등부 아이들을 위한 큐티컨텐츠(큐티쏙쏙)을 준비하려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몇 번을 미리 읽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것이 위 질문들에 대한 답이 될 줄이야..
마태복음 27장과 함께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을 여러 번 읽으면서, 오랜시간 내 마음속에서 던져온 "왜" 라는 질문에 성경은 "우리 떄문에" 라는 답을 가르쳐 주었다. 보다 더 정확히는 "우리를 너무너무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그래서 우리를 너무너무너무 살리시고 싶어서".. 라는 답이 내 마음에 쑤욱 들어왔다.
아.. 얼마나 많이 들어왔던 말인가 사실.
또 얼마나 많이 나 역시도 가르치고, 전하고 선포했던 말인가.
그러나 이번에는 이것이 말씀 속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실질적으로 다가온 것이다.
왜 예수님이 검과 몽치를 들고 온 군인들에게 체포당해 죄인취급을 받아야만 했냐고?
나를 너무 사랑해서 나 대신 죄인으로 취급당하시고.. 그러나 나는 살리기 위해.
왜 예수님이 거짓증언과 거짓고발이 난무하는 불의한 재판 앞에 침묵하셔야 했냐고?
나를 너무 사랑해서, 나 대신 정죄와 심판을 받으시고.. 그러나 나는 살리기 위해.
왜 예수님께서 조롱과 수치와 모욕을 받으셔야 했냐고?
나를 너무 사랑해서 ,나 대신 조롱과 수치와 모욕을 받으시고.. 그러나 나는 살리기 위해.
왜 예수께서 십자가 위에 달려 죽기까지 하셔야 했냐고?
나를 너무 사랑해서, 나는 죽일 수 없어서, 나 대신 죄의 값을 치르시고..그러나 나는 살리기 위해.
왜 예수께서 십자가 위에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기까지 하셔야 했냐고?
나를 너무 사랑해서, 내가 받아야 할 모든 죄의 저주와 형벌을 예수님 자신에게 전부 다 돌리시고.. 그러나 나는 살리기 위해.
그렇다. 우리 주님은 우리를 정죄하고 심판하기 위해 오신 분이 아니요 , 우리를 너무 사랑하셔서 죽어가는 우리를 살리기 위해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다.
요3:16-17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님의 십자가 안에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찐하게, 아주 깊이 담겨있다.
요한복음 3장16절에 "이처럼 사랑하사" 는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을 말하고 있다.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시면.. 얼마나 우리를 죄와 사망에 권세에서 건지고 싶으시면.. 얼마나 우리에게 새생명을 주고 싶으시면.. 그 분이 내가 받아야 할 모든 죄의 저주와 형벌, 사망과 고통, 수치와 모욕을 대신 받기로 결정하셨을까.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기에 아무 말도 않으시고 이 모든 억울함과 불의함 가운데서도 침묵하시며 끝까지 십자가의 길을 가신 것일까. 우리 주님이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에는 사랑 외에는 아무 이유를 찾을 수 없다.
주님의 바로 이 사랑이 오늘 우리 모든 인생에 답이 되고, 소망이 된다.
어떤 나락 가운데 있을지라도, 어떤 시궁창 같은 인생을 살아왔을지라도, 어떤 큰 죄악을 범하였을지라도 그것이 우리 주님의 우리를 향한 사랑보다 크지 않다. 아니, 절대 클 수 없다. 우리 주님은 죽음 그 이상까지도 나를 위해 대신 감당하시고 다시 부활하신 분이시다. 그 분의 그 순종 앞에, 그 순종을 통해 증명한 우리를 향한 사랑 앞에 그 누가 감히 '안 된다' 말하며 포기하고 절망에서 끝날 수 있겠는가. 없다. 없는 것이다. 진짜 이 사랑을 안다면, 진짜 이 사랑을 믿는다면 말이다.
어떤 인생도 포기해서는 안된다.
어떤 사람도 이 십자가 사랑 앞에서 소망없다 말해서는 안된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 앞에 불가능한 사람은 있을 수 없다.
아직 그 사랑을 다 알지 못해서..온전히 믿지 못해서.. 시간이 필요할 뿐..
우리 주님이 십자가를 통해 보이신 사랑은 온 인류의 소망이다.
롬8: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롬8:38-39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잊을 수 없네 하나님의 사랑
날 살리시려고 주신 생명
내 십자가지고 오르신 갈보리 언덕
날 향한 사랑 때문에
우리 때문에 생명 주셨고
우리 때문에 고통 당하셨네
우리 때문에 갈보리 오르셨네
무지한 우리 때문에
나는 보았네 피 묻은 십자가
날 구하시려고 흘린 사랑
나를 바라보시며 흘리신 용서의 눈물
날 향한 사랑 때문에
우리 때문에 생명 주셨고
우리 때문에 고통 당하셨네
우리 때문에 갈보리 오르셨네
무지한 우리 때문에
내가 살아야 할 이유 찾았네
나의 삶을 모두 주께 드리는 것
그가 날 위해 모든 것 주셨듯이
나의 삶을 모두 주께 드리리 주 위해
우리 때문에 십자가 지셨고
우리 때문에 죽음 당하셨네
우리 때문에 물과 피 쏟으셨네
무지한 우리 때문에
무지한 우리 때문에
나 같은 죄인 때문에
주님 제가 오래 교회안에 있었지만 그 십자가 사랑을 잘 모릅니다 '이처럼~사랑하신'에 담긴
주님의 너무너무너무 애끓는 마음을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그 사랑 확증받아
율법의 세력은 끊어지고
그사랑을 믿음으로 자유케 되길 원합니다
그럼으로 나의 삶을 모두 주께 드리길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