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구리는 참으로 시끄럽습니다. 짹짹소리 = 개구리입니다. 그러나 개구리는 다산의 상징이요, 곧 풍요의 상징입니다. 이집트에는 다산의 상징으로 개구리 머리를 한 신을 고대로부터 섬겨왔습니다.
오늘 우리도 더 많은 부와 명예, 지식과 권력, 네트워크 등을 추구합니다. 그것이 행복의 절대조건이라고 생각합니다.
틀린 생각도 아닙니다만, 과연 그것이 행복일까요?
개구리가 나일강에서 무수히 생기고 올라워서 네 궁과 네 침실과 네 침상 위와 네 신하의 집과 네 백성과 네 화덕과 네 떡 반죽 그릇에 들어갈 것이며...
개구리 재앙을 표현하신 하나님이 말씀입니다.
왕궁에도 풍요가 가득하며 침실과 침상, 곧 가족과 은밀한 나만의 공간에 풍요가 넘쳐납니다. 신하와 백성에도... 화덕과 떡 반죽 그릇에도...
오늘날 우리는 먹을 것을 걱정하지 않습니다. 무엇을 먹을까를 고민합니다. 사람은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고 동의하면서도 부추와 고기를 찾지, 하나님의 말씀을 찾지 않습니다.
누구든 나의 은밀한 관계 안에서 깊은 관계를 추구합니다. 한 사람이 아니라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고자 합니다. 채워지지 않는 관계의 만족을 위해서 하나님이 정하신 결혼의 범위를 넘어섰습니다. 데이팅 앱이 가장 유망한 산업분야가 되었습니다. 모텔과 여행이 최첨단 기술의 접목으로 그 한계를 넘어섭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가족의 범위는 고리타분하게 느껴지고 그 밖에서 정욕을 따라 삽니다.
개구리가 나일강에만 있도록 구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개구리가 너무 많아서 시끄럽습니다. 혼란스럽습니다. 당연하게 여겨지고 답답하게 느껴지던 그 선을 다시 찾게 되었습니다. 주님께서 그 선을 다시 그어주시길 간구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넘치는 풍요는 재앙이 되었습니다.
주님의 축복이 재앙으로 바뀌었습니다.
한국에 허락하신 사명을 위해서 축복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축복만 추구하다가 사명을 놓쳤습니다.
이제라도 남은 축복을 사명을 위해서 쓰기 원합니다. 더이상 더 많이 달라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미 너무 많이 받았습니다. 쓰지 않아서 썩어버렸습니다.
가나안 땅에 가서도 그랬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풍요와 전쟁이 없는 세상으로 임했지만 전쟁을 모르기에 싸우지 않아서 빼앗겨버립니다. 그것이 우리의 한계입니다.
간구해야 합니다. 기도해야 합니다.
바로 옆에 "고난의 행군"이란 그럴듯한 구호로 굶어죽어가는 그들을 보아야 합니다.
그것이 무엇으로 인한 것인지 다시 기억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 없는 세상의 결국인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아무리 그럴 듯한 사상도, 개념도, 운동도 하나님이 없으면 재앙이요, 하나님으로 인한 축복을 어떻게 쓸지 모르고 나를 위해서, 내 가족을 위해서만 쓰면 어떻게 되는 지 우리는 이 시대를 보며 깨달아야 합니다.
주님, 여기 있사오니 우리로 이 축복을 나누는 자들 되게 하소서.
풍요가 재앙이 되어버린 이 시대를 불쌍히 여기시고 낮고 가난한 마음으로 다시 하나님을 찾게 하소서!
아멘!!!